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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도 만성질환 관리가 중요하다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뇌졸중 등 만성질환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건강문제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감염병 사망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지기 이전의 통계로는 사망원인 중 감염병은 10%가 채 안 되고, 만성질환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만성질환은 비단 우리 문제만은 아니다. 개발도상국도 이에 큰 근심을 안고 있다.

- 글. 김장락 교수(경상국립대학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만성질환자가 급증하는 개도국
전 세계 만성질환 사망자의 대부분(5명 중 4명)이 소득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개도국에서 만성질환이 덜 중요해 보이는 이유는 공중보건 대처가 시급한 감염병이 상대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초기 증상이 거의 없는 만성질환의 인지와 진단율이 낮기 때문이다. 이제 평균 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개도국에서도 만성질환이 급증하여 심각한 보건 문제가 되고 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만성질환 발생 및 사망 위험이 높으며, 만성질환이 생길 경우 경제적 부담이 더욱 크다. 사회경제적 수준이 한 나라와 개인에 있어 만성질환의 가장 근원적 요인인 것이다.

생활습관이 만드는 비감염성질환
만성질환은 이환기간(일반적으로 1년 이상)이 길고 서서히 진행되는 질환을 말한다. 만성적 경과를 보이더라도 결핵,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감염증 또는 후천성면역결핍증(HIV/AIDS) 등과 같은 감염병은 보통 만성질환에 포함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만성질환을 비감염성질환(NCD, noncommunicable disease)이라 한다. 대표적인 만성질환으로는 순환기계 사망의 주원인인 심장병과 뇌졸중, 사망원인 1위인 암, 만성기관지염과 폐기종 같은 만성호흡기질환, 당뇨병 그리고 관절염 등이 있다. 만성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은 혈압이나 혈당 증가, 혈중지질 이상, 또는 비만세포 증가(과체중/비만)의 생리적 이상상태이다. 일정 기준을 넘으면 그 자체가 만성질환이기도 하다.

이보다 전 단계에서는 공통적인 만성질환의 위험요인이 있다. 교정 불가능한 요인(연령, 유전적 소인)과 교정 가능한 요인(흡연, 건강에 나쁜 식생활, 신체활동 부족, 과음 등 생활습관)이 있다. 만성질환을 흔히 생활습관병으로 부르는 이유이다. 이와 같은 단계적 위험요인을 고려할 때 어느 사회의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서는 여러 수준의 예방대책이 필요하다. 질병 발생 자체를 방지하는 일차예방 접근으로는 금연, 바람직한 식생활, 신체활동 증가 그리고 절주를 위한 교육과 건강증진이 있다. 질병의 무증상 시기에 조기 발견 및 치료를 함으로써 조기 사망을 예방하는 이차예방은 질병의 중간단계라 할 수 있는 고혈압과 고혈당(그로 인한 당뇨병)에서 중요하다.

이들 질병은 통증과 같은 증상이 없기 때문에 합병증이 생기기 전에는 인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치료 및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면서 나중에는 심장병이나 뇌졸중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킨다. 침묵의 살인자이다. 과거보다 관리 수준이 향상된 우리나라의 최근 통계를 보아도 고혈압 환자 중에서 자신의 고혈압을 인지하는 비율(인지율) 70%, 혈압강하제를 복용하는 사람의 비율(치료율) 65% 그리고 혈압이 잘 조절되는 사람의 비율(조절률) 50% 정도로 반 이상의 고혈압은 잘 관리되고 있지 않다. 당뇨병의 관리 수준은 이보다 못하다. 이는 증상이 없는 성인을 대상으로 고혈압과 당뇨병의 조기발견을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함을 보여준다. 심장병이나 뇌졸중의 초기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시술을 할 수 있는 시설로 이송하는 응급의료체계의 수립은 삼차예방이라 할 수 있다.

만성질환 관리 부담이 큰 개도국
개도국의 중요 보건문제로서 가난한 사람에게 많다는 만성질환의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흡연과 같은 만성질환의 위험요인을 공유하는 대표적인 질병이 치주질환(잇몸질환)이다. 우리나라에서 성인 유병률이 가장 높은 만성질환으로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통증과 치아의 상실로 이어지는 경우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킨다. 치주질환 역시 초기에는 증상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서 관리가 더욱 안 된다.

동남아시아 등 개도국의 농촌 지역에 대한 TV 프로그램을 보는 경우 나이가 쉰 살 정도만 넘어도 남아있는 치아가 몇 개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란다. 이것은 지역의 구강위생 교육이나 치과 시설에의 접근성의 부족 등 만성질환 예방과 관리 수준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심장병이나 뇌졸중 같은 심각한 만성질환이 발생하면 높은 수준의 의료 시설, 인력 그리고 많은 비용이 소요되어 개도국에서는 경제적 부담이 크다. 반면 전 단계에서의 만성질환 대책은 매우 값싸게 행할 수 있다.

알려진 주요 위험요인을 제거하면 심장병과 뇌졸중의 경우 80%를 예방한다. 금연, 건강에 좋은 식생활, 신체활동의 향상 및 절주에 대한 보건교육과 건강증진을 통해서 질병의 발생을 막을 수 있다. 침묵의 질병이라는 만성질환 특성을 고려하여 무증상 시기에 조기 발견 및 치료를 하면, 때 이른 사망을 예방할 수 있다. 만성질환의 일차 및 이차예방의 제공은 모든 사람이 비용을 지불할 수 있고, 접근 가능한 일차보건의료체계의 수립을 통해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