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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IH와 보다
약의 기원
‘기분이 왔다 갔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조울증 치료
리튬약의 개발과 재발견
예전에는 정신질환을 약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상상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현병약, 항우울제 등 정신과 약이 나오면서 조울증에 대한 약물치료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요즘 양극성 장애라고 부르는 조울증을 치료하는 약은 언제 나왔고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을까?

- 글. 정승규 약사(<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 저자)
천재를 만드는 조울증
조울증은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감정 장애다. 조증일 때에는 정신이 지나치게 흥분돼 과도한 자신감과 신체활동이 나타나지만, 우울증일 때에는 반대로 기분이 가라앉아 초조해지고 허무감을 느끼게 된다. 특이하게도 조울증의 조증 기간에는 뇌 신경세포의 자극으로 창의력이 높아지기도 한다. 작곡가 헨델, 슈만,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작가 버지니아 울프,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등 조울증은 번뜩이는 창의성을 발휘하게 해 천재를 탄생시키는 흥미로운 질환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우울증에서 벗어나 조증으로 바뀌기 시작할 때 뇌의 전두엽 아랫부위 활동이 저하되면서 윗부분이 강하게 활성화된다. 이때 창조력이 폭발한다. 니체는 45살이 되자 조증이 너무 강해져 정신착란 상태까지 이르렀다. 그는 이탈리아 토리노 길거리에서 마부에게 매 맞는 말을 구하려다 쓰러진 뒤,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신체기능을 상실하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광천수와 우연히 발견된 리튬
조울증을 치료하려는 시도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로부터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된 광천수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A.D 2세기 소아시아 에페수스의 의사 소라누스(Soranus)는 조증에 알칼리성 광천수를 권했다. 당시에는 에페수스 지역의 광천수에 알칼리성 리튬이 다량 함유된 것을 알지 못했지만, 경험적으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물을 마시면 회복되는 사람이 많았다. 자연에서 가장 가벼운 금속 리튬은 현재 전지, 배터리의 재료지만, 오랫동안 약으로도 사용해온 것이다.

조울증 치료제 리튬의 약효를 과학적으로 밝힌 사람은 호주 멜버른의 정신과 의사 존 케이드(1912~1980)이다. 케이드는 조울증 원인을 몸속의 독소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독소가 조증을 유발하고 소변으로 배출될 거로 생각했다. 그는 조증 환자의 소변을 모아 농축해 기니피그 복강에 주사하면서 어떤 반응이 생기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소변으로 나온 물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케이드는 잘못된 판단이었지만, 조증을 일으키는 독소가 요산이라고 생각했다. 요산은 물에 잘 녹지 않는 난용성이다. 그는 요산을 녹이기 위해 물에 잘 녹는 염으로 된 물질을 혼합해 수용성으로 만들어 주사했다. 여러 가지 조합을 시도하던 중 순수 리튬 염을 기니피그에게 주사했다. 그랬더니 평소 몹시 꿈틀거리고 몸을 구르며 떠는 기니피그가 갑자기 얌전해졌다. 조증에 리튬이 약효를 발휘한 것이다. 조울증의 원인은 요산이 아니었다. 사람에게 투여한 임상시험에서도 효과가 입증되자 그는 연구 결과를 호주 의학 저널에 발표했다.

영광은 ‘최초’보다는 세상을 설득한 자가 차지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몇몇 호주 의사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무명 저널에 게재된 잘 알려지지 않은 정신과 의사의 논문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조울증 환자의 60~70%에게 효능 있는 획기적인 약이었는데도 조명받지 못했다. 더군다나 영국 의학계는 리튬 같은 금속을 약으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공격했다. 그들은 리튬을 심각한 결점을 가진 비과학적인 신화라고 비난했다. 이렇게 리튬은 묻히는 듯했다. 다행스럽게도 우연히 케이드의 논문을 읽은 덴마크 정신과 의사 모겐스 슈가 리튬을 부활시켰다.

그는 학회가 있을 때마다 리튬을 알리려고 끈질기게 노력했다. 거듭해서 학회 발표를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줄기차게 리튬의 효능을 알렸다. 차츰 덴마크 정신과 의사들이 주목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유럽과 미국 의사들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60년대가 되자 리튬의 이점을 다루는 출판물들이 늘어나고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케이드의 실험과 관찰 그리고 슈의 설득으로 리튬은 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 표준이 되었다.

“과학에서 공적은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아닌 세상을 설득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리튬이 알려지고 학계의 주목을 받자 리튬은 조울증을 치료하는 1차 치료제가 되었다. 주로 자기 전에 복용하는데 탄산리튬 알약으로 나온다. 현재는 조울증 치료제 종류가 많이 늘었고 몇 가지 약을 병용하면 효능이 훨씬 높아진다. 리튬은 초기에는 외면당하고 잊혔다가 나중에 다시 진가를 인정받은 약이다. 위대한 발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알리고 설득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세계 최초라는 업적보다,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귀중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