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KOFIH속으로
전문가의 시선

새로운 지원사업 모델 발굴로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KOFIH가 되길
국제보건위기 전문가 차지호 교수 인터뷰
카이스트 차지호 교수는 KOFIH의 사외이사로 북한 및 국제 위기 지역의 보건의료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오고 있다. 그의 연구실을 찾아 인도주의와 북한, 외국인근로자 등 KOFIH와 관련된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정리. 편집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지금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건강 불평등 문제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우리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지역 간 이동제한령을 경험했습니다. 세계 여러 도시들이 락다운(Lockdown, 봉쇄령)을 시행하면서 여러 문제도 나타났고요. 락다운으로 도시의 시장 기능이 마비되면 사람들은 심각한 인도적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게 될 수밖에 없어요. 시장이 멈춰버리면 자산이 없는 사람들은 불규칙한 수입으로 빚이 늘고, 생계가 어려워집니다. 여기에 식량 가격까지 높아지면 가난한 사람들은 큰 곤경에 처합니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의료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돈이 없으니 병원에 갈 수 없는 거죠. 경제적 리질리언스(Resilience, 회복력)가 높은 국가는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줘서 어느 정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에 사는 국민들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 인도적 위기상황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상황을 인도적 위기라고 할 수 있나요?
인인도적 위기상황이라고 하면 우리는 은연중에 홍수나 지진,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를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일시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주로 인도적인 위기로 받아들이는 거죠.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인도적 위기 상황은 이보다 훨씬 폭넓게 정의가 됩니다. 자연재해보다 오히려 내전이나 국가 간 전쟁, 극심한 사회 불안정, 이로 인한 대량 난민 상황과 같이 사람이 초래한 재난이 보다 일반적인 인도적 위기 상황을 만들고 있고요.

자연재해는 일시적인 데 반해, 이러한 위기상황들은 자연재해보다 훨씬 심각하고 만성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자연재해는 긴급 복구를 통해 비교적 단시간에 사회 시스템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을 수도 있지만, 장기간의 내전 같은 상황은 특성상 국가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면서 진행되기에 이로 인해 동시다발적이고 심각성이 큰 문제들이 곳곳에서 출현합니다. 의료 시스템의 붕괴도 중대한 문제 중 하나예요. 의료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예방, 진단, 치료 등 필수 의료서비스에 대한 장벽이 커지고, 이로 인해 고통받거나 사망하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되죠. 이때 발생하는 희생자의 수는 전쟁으로 인한 폭력의 직접 사망보다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KOFIH는 북한에 인도적 보건의료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북한에 대한 지원사업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보시나요?
지원사업을 할 때는 지원받는 쪽에서 뭐가 중요하고, 어떤 걸 원하는지를 파악해서 그걸 하는 게 중요해요. 지금 북한은 일시적인 인도적 지원보다 안정적인 개발협력사업을 원한다고 알고 있어요. 인도적 지원은 특정 지역의 사람들이 생존하고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때 그 시스템을 대신해서 뭔가를 해주는 것이고, 개발협력사업은 현재의 시스템을 강화시키는 거잖아요.

북한의 경우 위기 시에는 수직적인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도 필요하겠지만, 장기간의 회복 플랜을 가지고 기존 보건의료 시스템을 보완하고 개선하는 형태의 협력이 보다 중요합니다. 또한 외부에서 어떤 지원을 하기 이전에, 북한 보건의료체계가 약화되는 구조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북한에 대한 세계의 경제 제제가 북한 주민의 건강문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보건의료체계도 의도된 고립과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는 안정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개발협력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된다고 한들, 북한에 대한 외부 제재가 계속된다며 이 사업들은 구조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요. 북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무언가를 지원하기 이전에 적어도 해를 끼치지 말자는 ‘Do No Harm’ 원칙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KOFIH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근로자에 대해서도 이동클리닉 지원 등의 인도적 지원을 해오고 있는데요. 외국인근로자의 의료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난민과 이주를 전공하고 있지만, 국내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라 대답은 조금 제한적일 수 있는데요. 다른 국가들 케이스를 보면 외국인근로자들이 그 나라의 의료 시스템에 통합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외국인근로자들이 우리 의료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다양한 경제적인 그리고 행정적인 장벽으로 인해 우리 의료 시스템에 충분히 통합되지 못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알고 있어요.

건강 문제는 아시다시피 조기에 치료하지 못하면, 병이 악화되어 더 큰 비용이 발생돼요, 외국인근로자가 결국 치료를 못 받아서 병이 악화돼 응급상태가 되면 의료보험이 없더라도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고, 더 큰 재정적 부담을 만들게 됩니다. 외국인근로자 개인이나 국가 모두 안 좋은 상황인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외국인근로자를 우리 의료 체계에 더 많이 편입시켜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이미 많은 선진국처럼 이민자 사회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알다시피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에요. 앞으로 일정 수준의 경제활동인구가 유지되려면 외국인 수용은 불가피합니다. 의료 재정 측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외국인들이 유입될수록 의료보험 가입자가 많아져 재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경제활동을 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은 젊기 때문에 더 건강하고, 의료비 지출이 적죠. 따라서 저는 보건학적이나 경제적인 측면을 봐도 지금보다 더 많은 외국인근로자가 우리나라 건강보험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KOFIH의 지원사업에 대한 의견이나 도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세기 초부터 국제 보건사업을 해왔던 유럽과 북미의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국제 보건영역에서 창의적이고 새로운 시스템을 시도하는 부분에 있어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사업 모델들을 답습하기보다, 현재 유럽과 북미 중심의 국제보건 거버넌스를 비판적으로 리뷰하고 더 혁신적이고 수평적인 국제보건 사업 모델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KOFIH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시도되고 엄밀한 연구를 통해 효과성이 입증될 수 있다면, 그것이 현재 정체된 국제 보건영역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드는 길이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