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KOFIH를 읽다
KOFIH-ing
Why에서 How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한반도를 위해
북한 문제는 언급될 때마다 어렵고, 여러 물음표가 따라다니는 주제다. ‘왜’ 그들을 도와야 할까.

- 글. 지혜론 대리(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한민족협력사업부)
늘 어려운 숙제 같은 북한
필자는 2014년 KOFIH에 입사해 캄보디아 모자보건 증진사업, 에티오피아 모자보건 증진사업, 교육연수사업(이종욱 펠로우십 프로그램), 평가연구 업무를 거쳐 현재 북한 보건의료지원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다양한 만큼 북한을 공부하고 북한과 협력하고자 하는 필자에게는 늘 ‘왜?’ 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물론 인도적 지원이든 개발협력이든 타 국가에 대한 모든 종류의 ‘개입’에는 ‘왜?’라는 철학적 질문과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북한에 대한 ‘왜?’는 ‘왜 북한이고 왜 북한을 지원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에 대한 물음인 경우가 대다수다. 적어도 다른 국가의 사업 담당자였을 때는 부연 설명이 요구되지 않았던 의문이다.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 관계’라는 남과 북의 법적 정치적 관계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개발협력에 있어서 북한은 많은 특수성을 가진 파트너국이다.

개발협력의 역사가 짧고, 모니터링을 위한 접근 제한 등 사회주의 국가라는 특수성 역시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을 둘러싼 정치안보적 상황이 우선순위에 있다 보니 인도적 지원마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왔다. ‘비정치적 영역’으로 인식되어 온 보건의료 협력 역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코로나 19에 대응한 북한의 국경 폐쇄로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간과할 수 없는 빈곤과 영양결핍
그럼에도 왜 북한을 지원하고 북한과 협력해야 할까? 흔히 국제 개발협력의 동기는 인도주의 또는 국익을 앞세운 정치·경제적 동기 등으로 설명되는데, 남북관계에서는 민족정체성과 통일지향이라는 특수성까지 더해져 있다. 이러한 시각 역시 큰 틀에서는 정치·경제적 근거에 기반한 협력 추구라고 볼 수 있는데, 인도적 지원 및 보건의료 협력 등 비정치·비군사 영역에서의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기능주의적 접근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이 증명하듯 통일 준비 과정으로서의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안보적 상황에 쉽게 압도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도적 필요(needs)가 있다면 교전국의 주민들도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도주의의 본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남북 보건의료 협력에서는 ‘건강 불평등 해소’와 ‘보편적 건강보장 달성’이라는 국제보건의 핵심 가치가 지원의 동기이자 목표가 될 수 있다.

영양결핍 인구, 발육부진 아동, 저체중 아동, 영유아 사망률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2019년 세계 기아지수’에 따르면 북한의 기아 상태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으로 분류되어 있다. 특히 영양결핍 인구비율이 전체 117개국 중 네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취약계층인 여성, 그중에서도 임산부와 수유기 여성은 영양결핍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장기적으로 영유아의 신체와 인지발달 장애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UN의 ‘2020년 북한 필요와 우선순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5세 미만 아동 10명 중 1명은 저체중이며 5명 중 1명은 만성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심각한 빈곤과 영양결핍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북한 주민들은 결핵 등 감염병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으며, 필수의약품과 의료장비 등 물자의 부족으로 900만 명 이상의 북한 주민들이 기본적인 보건 서비스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응한 북한의 유례없이 강력한 봉쇄정책은 이러한 취약성을 반영한 결과일 수 있다.

건강불평등 해결을 위한 과제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나와 이웃의 건강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국경을 넘나드는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이웃의 개념이 국가를 넘어 전 세계인으로 확장되었다. 글로벌 보건안보의 위기로 국제적 차원의 협력이 요구되었지만, 국가주의의 부상과 불평등한 백신보급 등 국제적 연대의 한계도 드러났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는 협력의 중단이 아닌 건강불평등 해소를 위한 더 강력한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북한당국의 결단이 선행되어야겠지만,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도 머지않아 국경을 열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북한의 감염병 대응을 포함한 안전한 국경개방 준비와 나아가 보건의료체계 재건을 위해 ‘어떻게’ 지원하고 협력할지 숙의하는 데 있다. 그리고 협력의 목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한반도를 위해, 인도주의 가치에 기반한 북한 주민의 건강불평등 해소에 있어야 할 것이다.

※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재단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