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질곡의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사할린 바로 알기
지리적으로 상당히 가깝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사할린은 왠지 실제보다 훨씬 멀리에 위치한 곳 같다. 매스컴을 통해서는 간간이 접해온 그곳. 우리는 이곳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할린은 러시아 연방의 섬으로 본토와의 거리는 7km로 매우 가깝다. 일본 훗카이도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 섬 사이의 해협을 라페루즈 해협이라고 부른다. 기후는 냉온대 기후에 속한다. 여름에는 몬순의 영향을 받아 약간 습하고 겨울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몹시 춥다. 타타르해협과 오호츠크해 사이에 위치해 수산자원이 풍부하며,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도 많다.
- 글. 편집실
사할린 한인
사할린 한인들이 사할린 정착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1910년대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토지를 잃은 조선 농민들이 살길을 찾아 러시아 연해주로 거쳐 사할린으로 간 경우다. 당시 일본에 살던 조선인 중 일부도 사할린으로 향했다.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사할린 남부를 차지할 때 건너갔다. 1938년 일제가 국가총동원령을 시행하며 노동력이 부족한 사할린으로 한국인들을 대거 보내기도 했다.
고려인
사할린에는 사할린 한인 외에 고려인도 살고 있다. 이 둘은 우리 한민족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정착과정이 달라 구분되기도 한다. 고려인은 1800년대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자발적으로 이주했으나, 1937년 러시아에 의해 극동지역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적으로 이주된 한인들이다. 그래서 출신도 한반도 북부가 많다. 반면 사할린 한인들은 주로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돼 러시아 사회로 편입된 이들로, 상대적으로 한반도 남쪽 출신이 많다.
KOFIH와 사할린의 인연
KOFIH는 2015년부터 사할린 강제동원 1세대 동포를 대상으로
다양한 의료서비스 지원을 통해 건강 증진에 기여해 왔다. 대표적으로 한국 초청을 통한 건강검진과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2019년부터는 현지 의료진과 사할린 각 지역을 방문하며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국내 초청진료가 어려워 현지에서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건강생활지원센터 구축 사업을 진행했으며, 지난 4월 30일 사할린 건강생활지원센터가 개소식을 가졌다. 사할린한인문화센터의 일부 공간을 개보수해 마련된 건강생활지원센터는 사할린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위한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지원하는 공간으로 운영되며, KOFIH는 건강생활지원센터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의료기자재, 건강프로그램 교육도구와 동포들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미니버스를 지원했다.
돌아오지 못한 그들
광복 이후에도 사할린 한인들은 그리던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일본은
패전 후 러시아와 일본인의 귀환협상을 빠르게 진행했지만 조선인들은 협상에서 배제했다. 대한민국은 광복 직후에는 내부 혼란으로 사할린 한인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이후에는 냉전이 시작되면서 공산권과 교류가 수십년간 거의 끊겨 송환이 불가능했다. 1945년 당시 사할린에는 약 4만 3,000명의 한인이 억류돼 있었다고 한다.
학살사건
사할린 한인은 일본인에 의해 학살되기도 했다. 1945년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며칠 뒤 사할린 미즈호 마을에서 발생한 학살로, 일본 패망을 눈치챈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에 남사할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소련군에 대비해 의용전투대를 결성했고, 의용전투대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미즈호 마을에 있던 한인 27명을 일본 군도와 죽창으로 무참히 살해했다. 학살된 한인 중에는 여성과 어린이도 포함돼 있었다. 학살이 벌어진 건 조선인들 속에 소련의 스파이가 많다는 유언비어 때문이었다.
한국 속 사할린
경기도 안산시에는 사할린 한인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가 있다. 단지 이름은 ‘고향마을’이다.
이곳은 2000년 2월 이후 귀국한 사할린 동포 1세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경기도 안산시에 조성한 영구 임대 아파트로, 우리 정부가 땅을 제공하고 일본 적십자사가 비용을 대면서 조성됐다. 고향마을에는 안산시 공무원들이 상주하며 영주 귀국자들의 생활을 돕는 영주귀국동포지원사업소와 각종 설비를 갖춘 복지관, 강당 등 쾌적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