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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IH와 보다
방구석3열

모든 기억이 사라져도
그녀는 여전히(Still) 앨리스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 하루하루를 흘려 보낸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잊는 것이 ‘나’의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나로서 남아있다.
영화 <스틸 앨리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 글. 전종보 기자(헬스조선)
억지 눈물도 웃음도 없다, ‘앨리스’만 있을 뿐
줄리안 무어 주연의 영화 <스틸 앨리스>는 오로지 ‘앨리스’를 중심으로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삶을 사실 그대로 담아낸다.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질환 앞에서 끝내 무력화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그럼에도 ‘앨리스’가 계속해서 그녀 자신으로 남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억지스러운 슬픔, 기쁨 등은 철저히 배제한 채, 긴 투병 과정에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 생각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데 집중하며,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도 눈물이나 웃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저 그녀의 투병기를 바라보면서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다.

영화는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되면서 환자의 기억력이 저하되는 과정과 함께 시공간감각, 언어능력 등 인지능력을 상실하는 모습을 사실과 매우 가깝게 그려냈다. 앨리스 역을 맡은 줄리안 무어는 시간 경과에 따른 알츠하이머병 증상 외에 표정, 움직임 변화까지 실제와 흡사하게 연기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여러 검사와 조발성·가족성 알츠하이머병, 알츠하이머병의 임상적 증상 등에 대한 의사의 설명은 극에 사실감을 더하는 요소다.

앨리스가 겪은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이란?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타우 단백질 등이 뇌 속에 쌓이면서 뇌 세포가 퇴화되고 인지기능이 서서히 저하되는 만성뇌질환이다. 치매 증상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60~70%) 차지하고 있다. 엘리스가 겪었던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은 65세 이전에 발병한 알츠하이머병을 뜻한다. 만발성 알츠하이머병(65세 이후에 발생)에 비해 진행 속도가 빠르고, 초기부터 언어기능이나 시공간능력 등의 저하가 뚜렷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될 경우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가족성 알츠하이머병’ 또한 의심할 필요가 있다. 가족성 알츠하이머병은 아포지단백 E ε4 유전자와 함께 아밀로이드 전구 단백질 유전자, 프리세닐린 1 유전자, 프리세닐린 2 유전자 등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발생한다. 극 중 앨리스 역시 의사 권유로 유전가 검사를 받은 뒤, 자신에게 생긴 알츠하이머병이 가족성임을 알게 된다.

요즘 들어 가물가물한데, 혹시 나도?
영화 속 앨리스가 그랬듯 알츠하이머병 초기에는 단기 기억력에만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기억하지 못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다른 인지기능도 함께 저하되는 모습을 보인다. 망상이나 환청과 같은 정신행동증상 또한 나타날 수 있으며, 말기에 이르면 사실상 모든 일상생활 기능을 상실한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기억력이 조금씩 저하되다 보니, 초기에 곧바로 알츠하이머병을 의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건망증과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 건망증은 기억하는 속도가 느리거나 일시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장애’ 중 하나로, 기억력이 저하된다는 점은 치매와 비슷하나 구체적인 증상에서 차이를 보인다. 건망증인 경우 특정 사건에 대한 ‘힌트’를 줬을 때 대부분 힌트를 듣고 생각을 더듬어보면서 기억해내지만, 치매 환자는 사건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다. 또한 치매는 성격이 변하고 언어·시간·공간 지각능력 등의 저하를 동반할 가능성이 큰 반면, 건망증은 이 같은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치매와 달리 뇌가 손상됐을 가능성 역시 낮다.

가깝고도 먼 알츠하이머병 치료
현재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증상을 지연시켜 환자가 최대한 오래 일상생활을 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치매는 증상이 만성적으로 악화되므로, 반드시 운동치료, 인지자극치료, 음악치료 등과 같은 비약물 치료를 동반해야 한다. 많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은 ‘나’를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큰 괴로움을 느낀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듯 노력해서 얻은 모든 것이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상황은 ‘지옥 같은 고통’을 겪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잊어선 안 된다.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말을 더듬거리고 무능해지는 모습을 보일지라도, 앨리스의 말대로 이는 우리가 아닌 우리가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병(病)의 모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