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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즐거움을 되찾다, 항우울제
우울증은 뇌 속의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세로토닌은 감정, 기분뿐 아니라 성관계에도 관여한다. 세로토닌 외에도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 물질을 조절하는 항우울제와 종류는 어떤 것이 있을까?

- 글. 정승규 약사(<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 저자)
코로나 블루
살아가면서 느끼는 대표적인 감정으로 희로애락이 있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이다. 이외에도 사람의 감정은 아주 다양한데 슬픔의 범주 안에는 우울감도 있다. 우울한 감정은 누구나 느끼지만, 심하거나 오래 지속되면 우울증, 즉 병이 된다. 우울증은 마음이 걸리는 감기와 같다. 누구나 쉽게 걸렸다가 시간이 지나면 금세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도한 슬픔은 위험하다.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심각한 우울증은 생명을 위협한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사람이 우울증에 걸린 비율이 36.8%나 된다. 한국인 10명 중 약 4명이 우울증에 걸릴 만큼 흔하다.

우울증의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 원인은 코로나19와 관련 깊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이전과 비교해 2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이 기간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격리로 인한 고립 그리고 코로나에 걸릴까 봐 걱정하는 마음으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져서다. 우울증이 생기면 상담을 통해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우울증약은 어떻게 개발됐는지, 최근에는 어떤 약이 사용되는지 살펴보자.

행복을 주는 약, 항우울제
항우울제는 정신과 치료제 개발이 한창이던 1950년대에 나왔다. 당시는 유명한 조현병약 ‘클로르프로마진’이 나오면서 정신과 치료에 약물요법이 도입되던 시기다. 정신질환에 새로운 약을 개발하려는 흐름에 발맞춰, 우울증에 영향을 주는 뇌 속 신경전달 물질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스위스에서 실험적으로 환자에게 복용하게 한 약이 우연히 효과를 발휘하면서 항우울제 ‘이미프라민’이 나왔다. 이미프라민을 우울증 환자에게 투여하면 피로감이 줄고 몸이 상쾌해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이미프라민은 연속으로 3개 고리가 이어진 구조여서 삼환계 항우울제라고 부른다.

이 약을 기본으로 화학구조를 조금씩 바꿔서 여러 가지 항우울제가 나왔다. 이런 작업을 분자구조 변형이라고 한다. 삼환계 항우울제는 효과는 좋지만, 부작용이 많다. 입안이 마르고 변비가 생긴다. 졸음이 오고 혈압이 떨어지며 체중이 늘기도 한다. 부작용이 생기는 이유는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외에 다른 신경전달물질에도 동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뇌 안에 있는 시냅스로 나온 세로토닌은 신경세포 안으로 재흡수되는데 이 과정을 막으면 세로토닌의 수치를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선택적으로 세로토닌의 양만 늘리면 우울증이 개선될 것이라는 가설이 나왔다. 1987년 미국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에서 세로토닌의 흡수만 억제하는 ‘프로작’이 나왔다. ‘행복해지는 약’이라는 별명을 얻은 프로작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 외에도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활력이 넘쳤다. 우울증이 없는 사람도 유쾌한 감정을 가지기 위해 프로작을 복용했다. 중요한 비즈니스나 대중 앞에서 강연할 때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도 사용했다. 데이트를 시작하는 소심한 연인들도 프로작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프로작을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라고 한다. 선택적으로 세로토닌만 흡수하는 걸 억제하는 약이라는 뜻이다. 현재 SSRI 항우울제는 우울증에 1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신기하게도 SSRI 중에 짧은 시간만 작용하는 프릴리지는 사정을 늦추는 효력이 있어서 조루증 치료에 사용된다. 이외에도 이팩사, 심발타 같은 다른 기전을 가지는 SNRI 그리고 웰부트린 같은 NDRI 등 노르에피네프린이나 도파민에 작용하는 약들이 나왔다. 최근에는 시냅스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브린텔릭스도 있다. 이 약은 기존 항우울제가 가진 부작용인 성기능장애를 개선하고 집중력 저하, 건망증, 머리가 멍해지는 증상개선 효과가 있다. 항우울제는 보통 2~4주 정도 지나 효과가 나타나기에 꾸준히 복용해야 약효를 발휘한다. 처음 약을 먹으면 민감한 반응을 겪을 수 있으나 대부분 며칠이 지나면 사라진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로 즐거움을 되찾자
다행히 코로나19도 잦아들고 서서히 일상으로의 회복이 이뤄지고 있다. 모임도 많아지고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코로나로 잔뜩 움츠렸던 사회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와 함께 코로나 블루도 사라지면 좋겠다. 우울증 치료에 항우울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와 더불어 정신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우울증은 조울증과 유사해 오진하기 쉬운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정확한 진단이 필수다. 혹시 우울증으로 힘들다면 병원 문을 두드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