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로 올라온
미세플라스틱
인간을 호모 플라스티쿠스(Homo Plasticus)라고 한다. 플라스틱이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것의 대부분이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사무실의 책상, 의자, 컴퓨터, 필기구, 코로나-19 예방용 마스크, 휴대폰, 형광등은 물론이고 입고 있는 옷도 마찬가지다.
- 글. 김장락 교수(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환경 보호자, 환경 파괴자가 되다
우리가 매일 재활용 쓰레기로 배출하는 플라스틱 용기, 비닐이나 스티로폼의 양이 얼마나 많은가?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폐기물의 양도 상당하다. 심지어 강철 덩어리처럼 보이는 자동차도 핵심 부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배달 음식을 시킬 때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에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정도이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한 번만 쓰고 버려도 될 만큼 원료는 무한하며, 우리 환경은 무사할 것인가? 처음 플라스틱은 코끼리 상아를 대체하는 환경의 보호자로 개발되었다. 플라스틱의 값싸고 편리한 특징 덕에 현대인은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구가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대가를 치를 때가 되었다.
환경의 구원자가 환경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의 장점인 내구성이 인류에게 독이 되어 날아왔다. 연안 바다, 호수, 강, 공터마다 쌓여있는 쓰레기 속 플라스틱 더미, 나뭇가지에 매달려 휘날리는 비닐들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대하는 모습이다.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태평양의 거대 쓰레기 섬’은 한반도 크기의 16배나 된다고 한다.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죽은 바닷새, 플라스틱에 감겨 질식사한 거북이, 페트병을 먹은 고래에 대한 기사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런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플라스틱은 석유가 만드는 석유화학제품이다. 플라스틱의 생산에서 폐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배출되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는 기후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미세플라스틱을 막는 방패는 없다
다른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서나 존재하는 작은 크기의 미세플라스틱(직경 5 mm 이하)이다. 미세플라스틱은 기원에 따라 일차와 이차로 구분된다. 일차 미세플라스틱은 의도적으로 제조된 플라스틱 알갱이로 담배 필터를 포함하는 담배꽁초, 의류 소재, 화장품, 손 세정제, 비누, 치약 및 탈취제 등에 포함된다. 이차 미세플라스틱은 수백 년 동안 썩지 않다 보니 오랫동안 햇빛에 바래고, 바람에 날리는 과정에서 조각나고 미세화된 플라스틱 파편이다. 안 보인다고 영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작은 크기로 인하여 사람의 먹거리와 먹는 물 그리고 숨 쉬는 공기를 통하여 몸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은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바다 생물에서 발견된다. 플랑크톤, 어린 물고기, 멸치, 고등어, 참치의 먹이사슬을 통하여 마침내 우리의 식탁 위에 오른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수돗물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된다. 지표수와 하수로부터 유출이나 플라스틱 쓰레기의 분해 때문으로 정수 과정으로도 미세플라스틱을 걸러내지 못한다. 도심 지역의 대기 중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된다는 연구에 따르면 호흡기도 인체 침입 경로이다. 공기 속의 미세플라스틱이 어디에서 유래되고 얼마나 존재하는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현대인이 미세플라스틱의 침입으로부터 피할 방법은 없다.
건강 위협하는 플라스틱, 절약이 답
미세플라스틱이 인체 내에서도 발견되는가? 최근 연구는 다양한 인간의 장기와 심지어 신생아의 태반에서 미세플라스틱을 검출하였고 노출한 양에 비례해서 체내에서 축적됨을 밝혔다. 그렇다면 인체에 대한 영향은?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 걸음마 단계인 연구들은 체내 흡수된 미세플라스틱에 저농도이지만 장기간 노출되면 인체 장기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동물 실험에서 미세플라스틱은 혈관의 노화,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 손상과 산화스트레스 증가, 염증 및 세포 손상 등을 유발한다. 플라스틱 생산과 폐기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문제와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환경오염, 생태계의 위협 등을 볼 때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세플라스틱의 잠재적 건강 악영향에 대해서는 사전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을 적용해야 한다. 현재의 지식으로 입증되지는 않지만, 건강 또는 환경에 심각하고 비가역적인 위해를 줄 가능성이 있으면 예방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앞으로도 플라스틱의 사용이 계속 증가될 것이라는 전망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현대인은 플라스틱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 다만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는 있다. 일회용 용기나 비닐 포장재를 가급적 덜 사용하기 위하여 텀블러나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플라스틱 없는 가게를 이용할 수 있다. 개인 소비행태 변화가 미치는 결과는 비록 작지만, 생산자의 행태나 사회적인 제도 마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플라스틱의 전 주기 관리의 근거가 되는 법률을 포함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전 지구적인 문제의 양상을 볼 때 해양 플라스틱 협약의 제정 등 국제적인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