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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IH 문화산책
21세기 신종 감염병 바로 알기
  • ‘돌파감염’ 우려돼도 백신 접종 권하는 이유
    예방 효과 떨어져도 사망 위험은 대폭 감소

    글_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강한 델타 변이가 유행하면서 백신을 맞고도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일명 ‘돌파감염’이 일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돌파감염이 일어나더라도 중증화와 사망 위험을 낮춰줄 목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라고 권고한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부산 기장군의 요양병원에서 8월 8일 근무 교대 직원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38명의 감염자 중 34명이 돌파감염으로 밝혀졌다.

코로나19 백신이 긴급사용 승인되고 접종이 시작될 때쯤 전체 인구 대비 70% 이상이 백신을 맞고 코로나19에 대한 항체가 생기면 코로나19와 공존하는, 일명 ‘위드 코로나’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실제로 일찌감치 백신 접종을 시작해 접종률을 상당히 끌어올린 영국과 싱가포르는 코로나19가 다시 확산세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지난 7월 과감히 위드 코로나를 시작했다. 싱가포르는 조심스레 단계적으로 천천히 진행하고 있지만, 영국은 8월 19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와 사적 모임 시 인원 제한,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방역 조치를 거의 다 해체하고 자유를 찾았다.
하지만 백신 접종 효과로 한동안 잠잠했던 두 국가에서도 최근 신규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백신을 맞고도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돌파감염’ 때문이다.

면역계 눈속임하는 델타 변이가 돌파감염 이끌어

돌파감염이 일어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바이러스가 백신의 감시망을 피하는 능력이 다소 생겼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시간이 흐르면서 백신의 효과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에 침입하려면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과 세포 표면에 나 있는 수용체가 결합해야 한다. 우리 면역계는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 스파이크 단백질에 수용체 대신 붙을 수 있는 항체를 만들어낸다. 이 항체를 만들어 미리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력을 구축하는 게 백신의 원리다.
세포를 집, 바이러스를 도둑, 백신을 문지기에 비유하자면 문지기는 도둑이 열쇠(스파이크 단백질)로 집의 자물쇠(수용체)를 열지 못하도록 그 열쇠에 꼭 맞는 가짜 자물쇠(항체)를 채운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대규모 인구를 감염시키며 증식하는 과정에서 진짜 자물쇠에는 들어맞으면서도 가짜 자물쇠를 피하도록 열쇠 모양을 조금 바꿨다(변이). 가짜 자물쇠를 속이고 진짜 자물쇠를 여는 확률을 높인 셈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델타 변이가 바로 바이러스가 쥔 새로운 열쇠다. 델타 변이는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비해 전파력이 강한 녀석으로 알려져 있다. 스파이크 단백질에 변이가 생긴 탓에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바이러스 침입을 예방하는 효과를 떨어뜨린다.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백신을 2차까지 완료했을 경우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는 약 93.7%였지만, 델타 변이에 대해서는 약 88%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한 백신의 예방 효과는 약 74.5%였지만, 델타 변이에 대해서는 약 67%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델타 변이가 유행하면서 돌파감염이 일어날 위험도 다소 높아졌다. 백신 접종 완료자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홍역 등 다른 감염병과 달리 코로나19는 백신 완료 한 번으로는 예방 효과가 평생 가지 않는다. 아직 구체적 근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생기는 면역 효과는 5~7개월 정도만 지속된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이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처럼 백신 접종을 일찌감치 시작한 국가들은 면역 효과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추가접종(부스터샷)을 시작했거나 앞두고 있다.

감염 예방 효과는 떨어져도 중증화 위험은 대부분 줄여

일각에선 백신을 맞아도 돌파감염이 될 수 있고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이 일어날 위험이 있는데 굳이 코로나19 백신을 맞아야 하느냐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백신이 코로나19 감염을 100% 막지는 못해도, 이 감염으로 인해 심각한 합병증을 겪거나 목숨을 잃을 위험은 대부분 예방할 수 있다며 접종을 권고한다.
특히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최근 내놓은 보고서들을 보면 코로나19 백신이 감염 자체를 예방하는 효과는 다소 떨어졌어도 중증화나 사망에 이를 위험은 대폭 줄여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CDC는 지난 9월 10일(현지 시간) 코로나19 백신 접종 유무에 따른 감염과 중증화, 사망 현황을 조사한 결과와 델타 변이에 대한 예방 효과 등을 조사한 결과를 주간 보고서로 공개했다.
먼저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의 코로나19 감염과 중증화 위험 차이를 비교한 결과, 미접종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될 위험은 접종자의 4.5배, 중증화로 입원할 위험은 10배 이상, 사망할 위험은 11배나 높았다. 연구팀은 지난 6월 20일 이후 미국 내에서 백신 접종자가 늘어나면서 미접종자와 접종자 사이의 감염률 차이가 더욱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전파력이 강한 델타 변이가 유행하는 동안에도 코로나19 백신이 중증화를 예방하는 효과가 여전히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도 같은 날 보고했다.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미국 9개 주에서 코로나19 감염으로 입원한 사람들의 백신 접종 현황을 조사한 결과, 백신의 입원 예방 효과는 약 86%였다.
CDC는 이 보고서들을 통해 코로나19 감염 후 합병증으로 인한 피해와 사망률을 줄이려면 코로나19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여전히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상당수가 백신을 맞지 않아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국내에서도 백신 접종률이 어느 정도 높아져야 코로나19 확산세를 잡고 방역 전략을 위드 코로나 방향으로 전환할지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방역당국은 10월 말까지 국내 성인의 최소 80%, 고령층의 최소 90%가 백신 접종을 완료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백신을 맞더라도 돌파감염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당분간은 실내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방역수칙을 반드시 잘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