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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IH 문화생활
지구촌을 밝히는 ‘한국인 슈바이처’
  • 미얀마 베데스다 클리닉 장철호 원장
    기꺼이 고통에 동참하다

    • 글_ 김보미
  • 곤궁한 이웃에게 가장 절실한 위로는 곁에서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며 그 가치를 고스란히 삶에 새겨온 사람. 제7회 이태석 봉사상 수상자이자 미얀마에서 무료 진료 활동을 펼쳐온 베데스다 클리닉 장철호 원장의 이야기다.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인제대 상계백병원 교수와 개원의를 거쳐 2006년 중국으로, 다시 2013년 미얀마로 떠났던 그의 여정을 담았다.
고통에 동참하며 살아가는 삶을 따라

2002년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서 엄마 품에 안겨 우는 아이를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아파서가 아니라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소아과 의사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진정한 봉사의 삶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삶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죠. 마더 테레사가 위대한 것은 가난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함께 있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길든 짧든 인생의 한 기간을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며 살아가는 ‘컴패션(Compassion)’의 삶. 그 가치 있는 삶을 마주하게 된 장철호 원장은 해외 의료봉사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늦둥이 외아들로서 80대의 연로하신 부모님을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소명을 다하겠다는 의지는 너무나 강렬했다.
그렇게 2006년, 장 원장은 중국 단둥에 닿았다. 북한 지원사업을 하는 단체에 의해 파송돼 단둥복지병원에 근무하며 탈북자나 단둥을 방문하는 북한 사람들, 그리고 그곳의 도시 빈민과 농촌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와 구제사업을 펼쳤다. 처음에는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농촌지역 외딴 마을에 사는 가난한 중국인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해 진료를 봤다. “중국은 외국인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외국인이 현지인 마을에 들어가거나 현지인과 접촉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어요. 금지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용기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한 가구 한 가구,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니다보니 입소문이 났죠.”
그렇게 발로 뛴 지 2년, 단둥시에서 도시 빈민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마침내 시의 협조 하에 공식적으로 중국인 진료를 시작하게 된 것. 농촌마을에 있는 정부 병원에서 진료를 했을 뿐 아니라, 도시 빈민의 집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또 환자를 병원으로 데리고 와 건강 검진과 치료까지 받게 했다.

미얀마 주민들과 함께한 장철호 원장(오른쪽에서 세번째).
미얀마 구순구개열 무료 수술 프로젝트

5년여의 봉사를 마치고 2011년 한국에 들어온 장 원장은 안식년을 보내는 와중에도 다음 봉사를 구상하고 있었다. 중국보다 더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지역으로 가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2012년 말경 미얀마에서 구순구개열 무료 수술 장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 국제구호단체(지아이씨)와 맞닿아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자격으로 미얀마에 가게 됐다. 한국에서 수술봉사팀(성형외과 전문의 2~3명, 마취과 전문의 1~2명, 간호사 2~3명 등)이 오기 전에 미얀마 정부로부터 수술 허가를 받고, 환자를 모집하고, 수술할 병원을 섭외하는 것이 그의 임무. 또한 환자들이 수술받기에 적합한지 사전 진찰 및 검사를 하고 수술 후 처치와 팔로업(Follow-Up)도 하면서 프로젝트 전반을 진행했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은 물론, 교통비가 없어 양곤까지 오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만달레이, 네피도, 힌따다 등의 중소도시에서도 수술을 진행해 지금까지 17차에 걸쳐 400명 이상의 환자에게 무료 수술을 해주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미얀마 정부로부터 수술 허가를 받아내는 것. 다행히 초기에는 현지 까렌침례교병원의 협력으로 수월하게 허가를 받아 환자를 모집하고 수술실도 빌려 쓸 수 있었다. 그 후에는 군부정당 고위직 인사의 도움으로 중소도시 힌따다의 정부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으나 2018년부터는 아예 수술 허가를 내주지 않아 현재 프로젝트가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베데스다 클리닉의 수술 병동이 완공되면 이곳에서 프로젝트를 이어갈 것이라는 장 원장.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한 아이와의 귀한 인연도 들려주었다.
구순열과 구개열에 영양실조까지 걸린 생후 8개월의 남자 아기.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가난 탓에 누나 둘은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엄마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공장에서 일해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단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야 수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매달 분유를 사서 갖다 주고, 작은 누나도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후원해주었다. 다행히 아기는 건강하게 자라 3년 전 무사히 구순열 수술을 받았다.
이 아이의 이야기와 함께 구순구개열 무료 수술 프로젝트가 2015년 CTS기독교TV에 소개됐는데, 이 방송을 본 시청자 두 사람이 각각 5000만원씩 기부했고 그 기부금을 바탕으로 지금의 미얀마 베데스다 클리닉이 건립됐다. 구순구개열 무료 수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늘 거점이 되는 병원이 있어야겠다는 장 원장의 생각이 두 사람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후원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그는 “그 아이를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2015년 CTS기독교TV에 방영된 구순구개열 무료 수술 프로젝트 관련 프로그램.
누구나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미래를 위해

미얀마는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으로 정부 병원의 진료비가 무료지만 시설이 열악하고 전문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서민의 경우 적절한 의료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베데스다 클리닉이 건립된 흘라잉따야 타운십은 양곤시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공단 지역으로 양곤시 33개 타운십 중 가장 가난한 서민 40만 명이 살고 있는 최대 인구 밀집 지역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 전문의 진료가 가능한 정부 병원은 단 하나, 사립병원도 한 곳으로 그 외에는 일반의가 진료하는 영세한 클리닉이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약국에서 값싼 약을 사 먹거나 미얀마 전통의학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베데스다 클리닉에선 무료로 내과·소아과·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인공신장실(혈액투석)까지 갖춰 하루 평균 70~80명의 환자가 다녀간다. 내년 초 수술 병동까지 완공되면 작지만 온전한 종합병원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베데스다 구순구개열 전문 수술센터를 만들어 현지 의사들에게 관련 수술 교육과 훈련을 하는 것이 장 원장의 꿈이다.
이웃의 삶을 보듬는 길 위에는 그의 영원한 동반자인 한혜경 씨도 함께 서 있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언어치료사로서 2000년부터 해외 의료봉사를 다니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늘 함께해온 그녀는 현재 언어통역 비정부기구(NGO)인 BBB코리아와 한국어학당을 설립해 미얀마 청년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한마음을 지닌 두 사람은 기꺼이 사람과 사람, 한국과 미얀마를 잇는 징검다리가 돼주었다.
또한 장 원장은 현지에서 수술이 어려운 중증 화상, 선천성 심장병, 항문 폐쇄 환자 등을 한국으로 초청해 무료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렇게 한국을 다녀간 환자가 모두 11명. 특히 선천성 심장병은 수술을 받지 않으면 조만간 목숨을 잃게 되고 시기를 놓치면 수술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빠른 수술을 요한다. 무료 수술이 가능한 한국의 병원을 찾아 그는 백방으로 힘쓸 수밖에 없다. 1년간의 기다림 끝에 심장병 수술을 받게 된 아이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는 “수술을 집도한 선생님이 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하셨는데, 다행히 한 생명을 구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회고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평생 한 번도 의사를 만나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장 원장은 15년을 한마음으로 한길을 달려왔지만 그는 ‘아직도’ 꿈을 꾸고 ‘여전히’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