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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IH 문화생활
21세기 신종 감염병 바로 알기
  • 삶의 터전 잃은
    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인수공통감염병

  • 코로나19와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공수병, 일본뇌염의 공통점은 뭘까. 이들은 과거 동물 사이에서만 돌던 병원체가 사람에게까지 전해져 병을 일으키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전문가들은 산업 활동과 기후변화로 생태계가 망가지면서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글_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2018년 2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바이러스 리스트를 발표했다. 이 리스트엔 에볼라바이러스와 지카바이러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바이러스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바이러스 등 악명 높은 바이러스들이 속해 있다. 그런데 리스트의 맨 마지막엔 정체를 알기 힘든 바이러스가 포함됐다. ‘질병 X’다. 질병 X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바이러스를 뜻한다.
인류 전체를 위협할 만큼 무시무시한 신종 바이러스가 등장할 가능성 중 하나로 WHO 전문가들은 에볼라바이러스나 에이즈바이러스(HIV)처럼 동물 간에만 전염되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해질 가능성을 꼽았다. 동물로부터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전염되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공통감염병은 기존 항바이러스제나 백신이 듣지 않거나, 감염된 환자에게 나타날 증상, 앞으로의 전파 속도와 양상을 예측하기 어렵다.
WHO는 바이러스만 지목했지만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세균이나 곰팡이, 기생충도 충분히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

사스바이러스와 메르스바이러스, 코로나19의 기원으로 알려진 과일박쥐. 박쥐가 갖고 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중간 동물 숙주를 거쳐 사람에게까지 전파된 것으로 분석됐다.
코로나19·신종플루 등 악명 높은 전염병은 대개 인수공통감염병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전문가들은 2015년에 발표한 인수공통감염병 연구 동향 보고서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인수공통감염병은 약 120개이며 이 중 30~40%가 국내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2010년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통해 특히 조심해야 할 인수공통감염병을 제시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와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O-157), 일본뇌염, 탄저, 공수병, 사스, 메르스,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 결핵 등이다. 각각 모기나 들쥐, 박쥐, 개, 고양이, 새, 소, 낙타 등 다양한 동물로부터 전염될 수 있다.
계절성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도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변이를 잘 일으켜 치료제와 백신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아주 영리한 바이러스다. 그래서 WHO는 매년 그해 겨울에 유행할 것으로 예상하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를 선정해 제약회사들이 백신을 개발하도록 한다.
문제는 인간뿐 아니라 조류나 돼지 등 동물로부터 유래한 인플루엔자바이러스다. 특히 돼지를 감염시키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전해질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 돼지의 호흡기 세포에 바이러스가 들러붙을 수 있는 수용체가 인간의 호흡기 세포에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돼지의 호흡기 세포에는 조류의 호흡기 세포에 있는 바이러스 수용체도 있다. 최악의 경우 조류 사이에서 돌던 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돼지에게 전해지고, 이후 인간에게 전해질 수 있다. 만약 돼지를 거쳐 이런 무시무시한 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하게 된다면 조류와 인간을 모두 전염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치료제와 백신으로 방어할 수 없어 전파율이나 치사율이 높아질 수 있다. 결국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는 팬데믹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9~2010년 유행했던 신종플루도 조류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일부와 돼지 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뒤섞인 변종이다. 다행히 신종플루바이러스가 인간 세포에서 증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작용을 하는 치료제(타미플루)가 개발되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치료제는 지금도 계절성 독감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도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했다. 지난해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다. 안타깝게도 아직 코로나19에 대한 확실한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소극적인 방법으로만 확산을 늦추고 있다. 6월 29일 현재까지 코로나19는 전 세계에서 1000만여 명이 감염됐고 이 중 50만여 명이 사망했다. 국내에서는 1만2000여 명이 감염돼 282명이 숨졌다.
코로나19는 극심한 고열과 근육통, 인후통, 심각할 경우 폐 손상 등을 일으킨다. 전문가들은 원래 야생 박쥐 사이에서 돌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천산갑이나 밍크 등 중간 동물 숙주를 거쳐 인간에게까지 퍼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바이러스의 유전적 관계를 분석했더니 박쥐 유래 코로나바이러스와 코로나19의 유사성은 89.1%나 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하면 변이를 일으켜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하더라도 약발이 듣지 않을 경우를 우려하기도 한다. 몇몇 연구 결과를 통해 유럽이나 아시아 등 각기 다른 대륙에서 발견된 코로나19 바이러스끼리 유전적인 차이가 있음도 밝혀졌다. 다행히 아직은 치료제와 백신을 따로 만들어야 할 만큼 바이러스 사이의 유전적 차이가 크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의 3차원 모습을 가장 실제와 가깝게 구현한 이미지.
인수공통감염병 발생 원인은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

2년 전 이미 질병 X라는 이름으로 예측됐을 만큼 전문가들은 앞으로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이 계속해서 등장할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동물 사이에서만 전염되던 병원체가 어떻게 인간에게까지 전해졌을까. WHO 전문가들은 ‘산업 활동으로 나타난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인류의 욕심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야생동물이 과거보다 인간과 더 많이 접촉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존아른 로팅겐 WHO 과학자문위원(노르웨이연구위원장)은 “기후변화로 동물의 서식지가 이동하면 사람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과거 동물 사이에서만 돌던 전염병이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캐리생태연구소 질병생태학자인 리처드 오스펠드 박사는 “생태계가 무너지면서 대형 동물은 줄어들고 들쥐처럼 병원체를 잘 옮기는 소형 동물이 번성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말했다.
역으로 말하면 인류가 야생동물의 터전을 망치지 않으면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할 위험도 낮아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미 산업화한 곳을 원래 자연의 모습으로 회복시키긴 어렵다. 결국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찾아 이를 치료하는 약물을 최대한 빨리 만드는 수 밖에 없다.
WHO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패턴이나 동물 생태계 변화 등으로 인수공통감염병이 등장할 확률을 예측하는 시스템뿐 아니라 인수공통감염병이 나타났을 경우 사람 간 전파가 얼마나 빨리 일어나는지 예측하는 시스템,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됐을 때 확산하는 양상을 예측하는 시스템 등을 개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신종 병원체를 이겨낼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고, 이들 약물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공급하는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