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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IH WAY
  • 신남방 국가 보건의료
    공적개발원조(ODA) 사업과 베트남

    • 글. 박기동 교수(세계보건기구 베트남 상주대표)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1월 신남방 정책을 천명하면서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베트남은 1960년대 우리나라 전투부대가 파병되었던 국가라는 과거의 역사에 더해서 삼성전자 휴대폰 생산 기지와 축구 감독 박항서의 활약이라는 현재의 관계가 어우러져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베트남 이해하기

베트남은 벳족의 나라이다. 전체 인구 약 9천 7백만 명 중 85%가 벳족이고 나머지 15%는 53개의 소수 민족이다. 벳족은 홍강 삼각주(Red River Delta) 지역에서 5,000년 전부터 문명을 이루면서 살아왔는데, 점차 영역을 확장해서 19세기 초반 원 왕조(Nguyen Dynasty) 시기에 현재의 베트남에 해당하는 영토를 확보했다.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의 동쪽 끝에 해안선을 따라서 길게 펼쳐진 이 나라는 북에는 중국, 서쪽에는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대륙의 큰 나라인 중국과는 2,000년 가까이 국경을 마주하면서 크고 작은 전쟁을 버텨내면서 독립 국가를 유지해온 자부심이 있다. 베트남의 문화와 전통 의학은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19세기 중반 서구 열강이 아시아 침탈 시기에 베트남은 현재의 라오스, 캄보디아와 함께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 식민 지배 동안에 베트남은 중국 문자(Chinese Character) 사용을 중단하고 로마자를 원용해서 개발한 현재의 Vietnamese 알파벳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공중 보건 영역에서는 프랑스 식민 정부가 설치한 Pasteur Institute를 중심으로 한 전염병 관리 체계가 도입됐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와 함께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남 공산당이 독립을 선언하였는데 프랑스가 이를 인정하지 않아서 10년간의 전쟁을 통해서 남북으로 분단이 되는 상황을 감수하면서 독립을 쟁취했다. 이후 20년간의 남북 베트남의 긴장 관계와 미국이 참전한 전쟁을 거쳐서 1975년에 통일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했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국영 무상의료 제도와 단과 전문 중앙 병원 등이 확립되었다. 많은 국영단과 병원들이 1969년에 설치되어 2019년에 50주년 기념 행사가 여러 병원에서 열리고 있다. 10년간의 고립과 경제 제재 기간을 거쳐서 1986년에 시장 개방과 개혁을 선언하면서 미국, 일본, 서유럽의 자본과 문화, 의료 기술 등이 도입됐다. 1992년에 헌법을 개정해서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환자에게 본인부담금을 받을 수 있고 사회의료보험 도입의 길을 여는 등 국영무상의료제도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이후 30년 동안 사회화(Socialization), 민관 협력(Public Private Partnership) 등으로 불린 정책을 시행하면서 국영 병원에 민간 의료 자본의 투자를 허용하고, 행위별 수가제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보험제도의 확대와 함께 국영병원에 대한 정부 예산 지원을 축소해왔다. 국영 병원 의사들에게 정규 근로 시간 이후에 개인의원에서 진료를 허용하고 완전 민간 의료 시설과 사립 의과 대학의 설치도 가능해졌다.
그 결과, 병상 수 기준으로 아직도 95%의 의료기관이 국공립이지만 진료 행태는 민간 의료기관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현재의 베트남 특유의 의료 문화가 형성됐다. 민간 의료 자본이 투자되어 현대 의료 시설이 많은 대도시 국영 병원에 환자들이 몰려서 3시간 대기 3분 진료가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의사들도 경제적, 비경제적 인센티브가 많은 대도시 국영 병원을 선호해서 사회주의 의료제도의 근간이 보건소 체계의 약화로 이어졌다. 사회의료보험 가입률은 87%까지 늘었는데 의료비 증가 추세가 의료재정 확장 속도를 크게 앞질러 2016년부터 사회보험재정이 당기 적자를 기록해서 사회의료보험의 지속 가능성에 적색 경고가 커졌다.

공적개발원조(ODA)에서 공적개발협력(Official Development Cooperation)으로

베트남은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이다. 하노이나 호찌민 등 대도시를 가보면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유한 도시를 모습이지만 아직 개발도상국이다. 2019년 현재 1인당 국민 소득은 약 USD 3,000 수준으로 한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한국이 USD 3,000를 통과한 시점이 1986~1987년인데 베트남의 여러 사회적인 문제는 1980년대 중반 한국이 안고 있었던 문제들과 유사한 것들이 많다.
의료제도의 문제도 비슷하다. 그러나 일부 영역에서는 1990년대 후반 한국 사회가 겪었던 문제들이 보이기도 하고, 한국과 동시대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문제들도 있다. 베트남은 아직 젊고 역동적인 사회지만 이미 빠른 속도로 노령화하고 있다. 60세 이상 인구의 비중이 12%를 넘어섰는데 이는 한국의 1999~2000년 수준이다. 미세 먼지에 의한 대기 오염의 문제는 한국과 베트남이 동시에 겪고 있는 건강 문제다. 베트남은 2035년 1인당 국민소득 USD 10,000 달성이 경제 개발 목표이다. 그때까지 성장 엔진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 각종 개혁 조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의료제도도 중요한 개혁 분야다.
베트남은 한국이 병원을 지어주고 의료기기를 제공해주는 원조보다는 한국이 1980년대~1990년대의 성장기를 거치면서 의료제도의 각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는지의 경험을 공유하고 성공적으로 정착한 한국의 의료제도의 여러 측면을 벤치마킹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의사 면허 제도, 의료보험 심사 평가 제도, 질병관리본부, 식약처 모형 등이 포함된다. 신남방 정책에서 한국은 베트남을 과거의 원조 대상 국가에서 미래 지향적인 공적 개발 협력 대상 국가로 관계 재정립을 할 필요가 있다.